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과학사 숨은 조력자 (보이지 않는 혁신가, 허블, 측광 알고리즘)

혜 안 2026. 7. 29. 19:30

목차


    에드윈 허블의 논문에 들어간 거의 모든 관측 데이터는 그가 직접 찍은 게 아닙니다. 저는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꽤 오래 멍했습니다. 허블이라는 이름이 너무 크다 보니 그 뒤에 붙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과학사를 조금만 파고들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위대한 발견'의 상당수가 사실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된 공동 작업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허블을 허블이게 만든 사람, 밀턴 휴메이슨

    에드윈 허블이 논쟁적인 인물이라는 건 천문학계에서는 꽤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미국 출신인데 영국에서 1년 유학하고 돌아와 죽을 때까지 영국 발음을 고수했다는 일화나, 동료들이 사적인 편지에 "진짜 꼴 보기 싫다"고 썼다는 기록은 그가 얼마나 자기 연출에 공을 들인 사람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허풍과 연출 뒤에서 실제로 망원경을 붙들고 밤을 새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밀턴 휴메이슨입니다.

    휴메이슨은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윌슨산 천문대가 지어질 당시 노새로 짐을 나르던 인부였는데, 손재주가 워낙 좋아서 천문대장 조지 헤일의 눈에 띄었습니다. 당시는 관측 천문학이 일종의 도제식 기술에 가까웠기 때문에 학위보다 실력이 먼저였습니다. 고리타분한 동료 천문학자들이 헤일의 결정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휴메이슨이 내놓는 관측 퀄리티를 보고서는 모두 납득했다고 합니다.

    그가 특히 잘한 건 분광 관측(spectroscopic observation)이었습니다. 분광 관측이란 천체에서 오는 빛을 파장별로 분해해 무지개 같은 스펙트럼으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은하가 얼마나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지, 즉 후퇴 속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허블이 나중에 "은하가 멀어질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우주 팽창의 증거를 논문으로 발표했을 때, 그 논문을 채운 관측 데이터의 거의 전부가 휴메이슨이 밤새 쌓아 올린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발견의 공로 문제는 더 복잡합니다. 은하들이 단체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포착한 건 베스토 슬라이퍼라는 다른 천문학자였고, 거리와 후퇴 속도 사이의 비례 관계를 먼저 제시한 건 스웨덴의 크누트 룬드마크였습니다. 허블은 슬라이퍼에게 "논문에 쓸 건 아니고 확인만 하겠다"며 데이터를 받아갔다가, 정작 자기 논문에는 슬라이퍼의 이름을 한 글자도 넣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좀 황당했습니다. 그래도 훗날 허블이 사적인 편지에서 "슬라이퍼의 데이터 덕분에 가능했다"고 인정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입니다.

    한편 휴메이슨은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논문을 리드하는 역할을 맡지 못했지만, 그래도 허블이 그의 이름을 공저자로 넣어줬다는 건 당시 기준으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역할과 크레딧 사이의 간극이 지금 기준으로는 여전히 불공평하지만, 그 시대의 맥락을 감안하면 완전히 무시된 케이스보다는 낫다는 씁쓸한 평가가 가능합니다.

    • 밀턴 휴메이슨: 무학 출신, 허블 논문의 거의 모든 분광 관측 데이터를 직접 수집
    • 베스토 슬라이퍼: 은하 후퇴 현상을 최초 발견했으나 허블 논문에서 누락
    • 크누트 룬드마크: 거리-후퇴속도 비례 관계를 허블보다 먼저 제시
    • 허블 상수(Hubble constant) 초기값은 현재와 크게 달랐으며,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수정됨
    요약: 허블이라는 이름 뒤에는 휴메이슨의 관측 노동, 슬라이퍼의 데이터, 룬드마크의 분석이 있었고, '위대한 발견'은 한 사람의 천재성이 아니라 여러 손이 쌓아 올린 결과입니다.

     

    별을 하나씩 떼어낸 알고리즘, 피터 스테트슨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지만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있습니다. 피터 스테트슨입니다. 천문학자라기보다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에 가까운 이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성단 사진에서 얻는 정보의 상당 부분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문제는 이렇습니다. 별 하나만 찍힌 사진이라면 밝기와 온도를 재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백, 수천 개의 별이 빽빽하게 모인 성단(star cluster)을 찍으면 별빛이 서로 겹쳐 하나의 얼룩처럼 보입니다. 스테트슨 이전까지는 성단 외곽처럼 별이 비교적 드문 영역에서만 개별 별의 밝기를 잴 수 있었습니다. 중심부는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이었죠.

    스테트슨이 적용한 원리는 포인트 스프레드 함수(PSF, Point Spread Function)입니다. PSF란 점 광원인 별빛이 사진 센서에 기록될 때 나타나는 빛의 퍼짐 패턴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중심이 가장 밝고 외곽으로 갈수록 정규분포 형태로 감소하는 특성을 가집니다. 별 두 개가 붙어 있어도 정규분포 두 개가 겹친 것이므로, 수학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는 발상이었습니다. 스테트슨은 이 원리를 바탕으로 사진 속 얼룩에서 각각의 별 위치와 밝기를 자동으로 찾아내는 측광 알고리즘(photometry algorithm)을 개발했습니다. 측광이란 천체의 밝기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알고리즘이 얼마나 실용적으로 쓰이는지는 천문학 바깥에서도 확인됩니다. 같은 PSF 기반 분리 기법이 형광 현미경 사진의 해상도를 높이는 데 그대로 쓰이고, 실제로 집회 인원 추산에 적용한 연구 사례도 있습니다. 촛불 사진에서 각각의 불빛을 측광 프로그램으로 자동 카운트하고, 촛불을 들지 않은 사람은 통계적으로 추산하는 방식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가 직접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과학적 도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작동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오주원 박사가 말한 것처럼, 21세기 천문학은 천문학적 감각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실감한 건, 스테트슨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허블이든 제임스 웹이든 망원경이 찍어 보내는 사진의 절반쯤은 제대로 읽혀지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도구를 만든 사람이 도구를 사용한 사람보다 덜 유명한 세계는 언제나 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아인슈타인 뒤의 마르셀 그로스만

    비슷한 맥락에서 마르셀 그로스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취리히 연방공대(ETH)에서 아인슈타인과 동기였던 그는, 교수들과 사이가 나빠서 졸업 후 자리를 구하지 못하던 아인슈타인에게 베른 특허청 일자리를 소개해줬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일반 상대성 이론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미분 기하학(differential geometry)을 아인슈타인에게 직접 가르쳐준 것도 그로스만이었습니다. 미분 기하학이란 곡면과 곡선을 다루는 수학 분야로, 중력에 의해 시공간이 휜다는 개념을 수식으로 표현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언어입니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 논문 서문에 그로스만에게 빚졌다고 명시했습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드문 사례입니다(출처: 막스플랑크연구소).

    뉴턴의 《프린키피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드먼드 핼리가 역제곱 법칙과 타원 궤도의 관계를 뉴턴에게 물어본 게 집필의 직접적인 계기였고, 완성된 원고를 왕립학회가 재정 부족으로 출판하지 못하자 핼리가 사비로 출판비를 댔습니다. 뉴턴의 이름만 표지에 남았지만, 그 책이 세상에 나오게 한 사람은 핼리였습니다(출처: 영국 왕립학회).

    요약: 스테트슨의 측광 알고리즘은 성단 중심부 천문학을 열었고, 그로스만과 핼리처럼 '도구와 기회를 제공한 사람들' 없이는 위대한 이론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허블 법칙의 진짜 발견자는 누구인가요?

    A. 은하들이 집단으로 멀어진다는 사실은 베스토 슬라이퍼가 먼저 발견했고, 거리와 후퇴 속도의 비례 관계를 먼저 제시한 건 크누트 룬드마크입니다. 허블은 이 둘을 종합하고 더 체계적인 데이터로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단일 발견자를 콕 집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Q. 피터 스테트슨의 측광 알고리즘은 지금도 쓰이나요?

    A. 네, 현재도 천문학 실습 과정에서 성단 이미지 분석에 사용됩니다. 허블 우주망원경이든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든, 빽빽하게 겹친 별빛을 분리하는 기본 원리는 스테트슨이 정립한 PSF 측광법을 따릅니다. 형광 현미경 이미지 처리 분야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Q. 밀턴 휴메이슨은 정식 천문학자로 인정받았나요?

    A. 학위는 없었지만 윌슨산 천문대에서 공식 관측자로 오랜 기간 근무했고, 허블의 주요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이 올랐습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이례적인 인정이었지만, 그의 관측 기여에 비하면 크레딧이 충분히 돌아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Q. 마르셀 그로스만은 아인슈타인과 공동 논문을 쓴 적이 있나요?

    A. 있습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완성되기 전인 1913년, 아직 완전하지 않은 형태의 중력 이론을 담은 논문을 두 사람이 공동으로 발표했습니다. 이후 1916년 완성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서문에 그로스만의 도움을 명시적으로 밝혔습니다.

     

    결론

    허블, 뉴턴, 아인슈타인. 교과서에서 이 이름들을 처음 봤을 때 저는 그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들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파고들면 그 이름 뒤에는 데이터를 쌓은 사람, 알고리즘을 짠 사람, 수학을 가르쳐준 사람, 출판비를 댄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위대한 발견은 혼자 완성되지 않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하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건, 기억되는 이름과 실제로 일한 사람 사이의 간극이 지금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나마 지금은 공저자 표기, 데이터 기여 명시 같은 문화가 자리 잡아 가고 있으니 방향은 맞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한 번쯤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ObhR8vP3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