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42억 년 전 지구 최초의 공통 조상이라 불리던 루카(LUCA)가, 사실 생명의 시작이 아니었다는 논문이 2026년 2월 발표되었습니다. 처음 이 내용을 접했을 때 솔직히 머릿속이 멈추는 느낌이었습니다. 최초라고 배웠던 것이 최초가 아니라면, 그 앞에는 대체 무엇이 있었던 걸까요.

루카는 왜 '최초'가 아닌가
일반적으로 루카(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공통 조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루카란, 현재 존재하는 박테리아·고세균·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갈라져 나온 단 하나의 세포 조상을 의미합니다. 교과서적인 설명으로는 "여기서부터가 생명의 시작"이라는 식이었죠.
그런데 2024년 네이처 이콜로지 앤 에볼루션(Nature Ecology & Evolution)에 실린 논문이 이 상식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출처: Nature Ecology & Evolution). 논문 조회수 40만 회, 인용 220회, 영향력 점수 18.80이라는 수치는 해당 분야에서 이례적인 반향입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루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생명체였습니다. 게놈 크기 약 2.5MB, 단백질 약 2,600개, 완전한 리보솜(Ribosome), 그리고 초기 형태의 면역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여기서 리보솜이란, 세포 안에서 유전 정보를 읽어 단백질을 합성하는 핵심 분자 기계입니다. 아무리 단순한 생명체라도 리보솜 없이는 작동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루카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했을 리는 없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특히 오래 생각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루카는 첫 번째 생명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기술로 추적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생존자'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42억 년 전 지구에는 루카와 함께 살았던 다른 생명체들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 중 루카만이 현재의 후손을 남긴 것으로 보입니다.
- 루카의 게놈 크기: 약 2.5MB
- 보유 단백질 수: 약 2,600개
- 완전한 리보솜 및 초기 면역 시스템 보유 추정
- 42억 년 전 루카 외 다른 생명체들도 공존했을 가능성 존재
파랄로그가 열어준 루카 이전의 창
2026년 2월, 셀 지노믹스(Cell Genomics)에 발표된 논문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출처: Cell Genomics). MIT의 그레고리를 포함한 세 명의 생물학자가 제시한 개념이 바로 '보편 파랄로그(Universal Paralog)'입니다. 이 단어가 처음엔 꽤 낯설게 느껴졌는데, 저도 이 논문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파랄로그(Paralog)란, 하나의 조상 유전자가 복제되어 두 개 이상의 버전으로 나뉘고, 각각이 서로 다른 기능으로 분화된 유전자 쌍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헤모글로빈 유전자는 여덟 종류인데, 이 모두가 약 8억 년 전 단 하나의 원본 유전자에서 복제되어 갈라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이 복제와 분화가 박테리아에도, 고세균에도,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존재하는 유전자 쌍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보편 파랄로그라고 부릅니다.
모든 생명체가 루카라는 단 하나의 세포에서 나왔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이 복제된 유전자 쌍은 루카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분리되어 있었어야 합니다. 프리루카(Pre-LUCA), 즉 루카 이전의 무언가가 존재했다는 과학적 근거가 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논리 구조는 한 번에 이해하려 하면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루카 전에 뭔가 있었다'는 결론만 붙잡고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논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편 파랄로그는 최초의 생명체들에 대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정보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루카 이전으로는 화석도, 직접 증거도 없습니다. 유전자 안에 새겨진 복제의 흔적만이 그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인 셈입니다.
이 발견이 바꾸는 것들
일반적으로 "생명의 기원"이라고 하면 어떤 특정한 순간, 즉 없던 것이 갑자기 생겨나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종교든 신화든 과학 교과서든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 연구를 접하면서 가장 강하게 받은 인상은, 생명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이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루카가 등장했을 때 단백질 합성, 세포막을 통한 물질 운반, 유전 정보의 복제와 같은 생명의 핵심 기능들은 이미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설계 없이, 시간과 화학 반응만으로 쌓여온 결과라는 것이 지금 과학이 말하는 내용입니다. 다윈이 1871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따뜻하고 작은 연못에서 암모니아와 인산염, 빛, 열, 전기가 있다면 어쩌면 생명이 시작될지도 모른다"고 썼던 그 직관이, 150년 만에 분자 수준의 증거로 뒷받침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세기나 신화 속 창조 이야기들은 전부 틀린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은 자기 몸의 정교함 앞에서 본능적으로 경이를 느꼈고, 그 감각을 당시 언어로 표현한 것이 신화와 종교였을 것입니다. 흙으로 빚었다는 말은 탄소 기반 화학 반응의 은유였을 수 있습니다. 단어는 바뀌었지만, 그 앞에서 느끼는 경이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칼 세이건이 "우리는 별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을 때의 감각과, 내 세포 안에 루카의 유전자가, 아니 루카보다도 오래된 분자의 흔적이 지금도 살아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같은 결을 가집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과학이 신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층위의 신비를 드러낸다는 것을.
자주 묻는 질문
Q. 루카(LUCA)가 최초의 생명체가 아니라면 진짜 최초는 뭔가요?
A. 현재로서는 "진짜 최초"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루카 이전의 프리루카 단계에서도 이미 단백질 합성과 물질 운반 같은 생명 기능이 진행 중이었다는 사실만 확인되었을 뿐, 그보다 앞선 단계는 화석도 직접 증거도 없어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최초 생명"이 딱 정해져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연구 결과는 생명이 점진적 화학 과정의 연속임을 보여줍니다.
Q. 파랄로그가 루카 이전 생명의 증거가 되는 이유가 뭔가요?
A. 모든 생명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보편 파랄로그는, 하나의 조상 유전자가 복제되어 두 버전으로 나뉜 결과입니다. 이 복제가 박테리아·고세균·인간 모두에게 동일하게 남아 있다는 것은, 루카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복제와 분화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제 경험상 이 논리가 처음엔 낯설지만, '복제 흔적이 루카보다 오래됐다'는 한 문장으로 이해하면 훨씬 명확해집니다.
Q. 이 연구가 종교적 창조론과 충돌하나요?
A. 직접 충돌한다기보다 다른 언어로 같은 경이를 말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과학은 '어떻게'를 설명하고, 종교는 '왜'와 '의미'를 말해온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느 특정 날, 신이 생명을 창조했다"는 문자적 해석과는 충돌합니다. 저는 창조 신화를 당시 언어로 표현된 경이의 기록으로 보는 시각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Q. 2026년 셀 지노믹스 논문, 어느 정도로 신뢰할 수 있나요?
A. MIT 소속 연구자를 포함한 저명한 생물학자들이 공동 저술했고, 셀 지노믹스는 세계 최상위 학술지 중 하나입니다. 다만 이 논문이 제시하는 것은 루카 이전을 연구할 수 있는 방법론이지, 프리루카의 정체를 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과학계에서 방법론이 제시되면 그 뒤로 후속 연구들이 검증하는 과정이 이어지므로, 아직은 가설 단계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결론
루카가 최초가 아니었다는 사실보다, 제가 더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생명은 누군가 만든 것이 아니라, 지구가 40억 년 이상 스스로 써 내려간 과정이라는 것. 그 과정의 흔적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제 세포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
이 연구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2024년 네이처 이콜로지 앤 에볼루션 논문과 2026년 셀 지노믹스 논문을 직접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전문 용어가 많지만, 핵심 그림만 봐도 루카와 프리루카의 관계가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과학이 신비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층위의 경이를 열어준다는 감각, 저는 이번 연구에서 그것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