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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에 도시가 통째로 가라앉아 있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신화 속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동쪽 30km 해저에는 실제로 고대 항구도시 토니스 헤라클레이온이 잠겨 있습니다. 거기에 악마의 힘을 빌려 하룻밤에 썼다는 600페이지짜리 필사본까지 알게 됐을 때, 저는 솔직히 이건 그냥 넘기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진 한 번에 도시가 사라졌다 — 수중고고학이 밝혀낸 사실
서기 365년, 지중해 동부를 강타한 대지진과 초대형 해일 하나가 이집트 북쪽 해안선 전체를 바꿔놓았습니다. 그 직격탄을 맞은 곳이 바로 카노푸스와 토니스 헤라클레이온이라는 고대 항구도시들입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31년에 알렉산드리아를 세우기 훨씬 전부터 번성하던 도시들인데, 지진 하나로 해저에 묻혀버린 겁니다.
제가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럼 이게 2,000년 가까이 아무도 몰랐다는 거잖아?"였습니다. 그런데 발견 자체는 이미 2000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수중고고학자 프랑크 고디오가 주도한 발굴 작업으로, 도시 전체의 윤곽이 꽤 많이 밝혀진 상태입니다. 2025년에 새로 주목받은 건 유물 네 점을 인양했다는 소식이었고, 이집트 정부가 관광 홍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알린 결과였습니다.
여기서 수중고고학(Underwater Archaeology)이란, 해저·수몰지·하천 바닥처럼 물속에 잠긴 유적을 체계적인 발굴 방법론으로 조사하는 고고학의 한 분야입니다. 현대적 방법론의 토대는 텍사스 대학의 조지 베스가 난파선 발굴을 통해 처음 정립했고, 이후 수몰 도시 전체를 발굴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신안 해저선 발굴을 계기로 해군 잠수 부대가 투입되고, 이후 민간 수중고고학 연구로 이어진 역사가 있습니다.
유물을 인양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일부에서 이상하다는 반응이 있었는데, 저는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해저의 석재 유물은 수 톤씩 나가고, 인양 과정에서 유물이 손상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세심한 기준 없이 무조건 꺼낼 수 없는 겁니다. 신라 황남대총 발굴 이후 인근 고분을 당장 파지 않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해저 발굴이 어려운 이유, 숫자로 보면
토니스 헤라클레이온 발굴의 규모를 실감하려면 몇 가지 수치를 보는 게 빠릅니다.
- 발굴 시작 연도: 2000년 (발견 후 현재까지 약 25년째 진행 중)
- 알렉산드리아에서 동쪽으로 약 30km 거리의 아부키르만 해저
- 인양 유물 중 일부는 무게가 수 톤에 달하는 석재 조각상
- 2025년 이번에 추가 인양된 유물: 4점 (출처: 유럽해양고고학연구소 IEASM)
숫자만 봐도 이게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는 게 느껴집니다. 제 경험상 뭔가 "갑자기 나왔다"는 식의 보도는 사실 오랜 작업의 중간 결과를 홍보 타이밍에 맞춰 공개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집트 정부의 고고학 홍보 전략도 그 맥락에서 이해하면 훨씬 납득이 됩니다.
악마의 성서와 외경 — 정경 선별은 신의 뜻인가, 인간의 결정인가
코덱스 기가스(Codex Gigas)라는 필사본이 있습니다. 13세기 보헤미아, 지금의 체코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약 600페이지, 무게 75kg짜리 양피지 책입니다. 여기서 코덱스(Codex)란 두루마리가 아닌 책 형태로 제본된 고대 필사본을 뜻하며, 기가스(Gigas)는 라틴어로 '거인'이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거인 책입니다.
이 책이 악마의 성서라 불리는 이유가 재밌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하룻밤에 완성됐다는 건데, 학자들은 최소 20년 이상 걸렸을 작업량이라고 봅니다. 더 신기한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필체에 흐트러짐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만화가도 10년 그리면 그림체가 달라지는데, 수십 년 작업에 손 떨림 한 번 없다는 게 전설을 낳기에 충분했던 거죠. 솔직히 저도 PDF를 펼쳐보기 전까지는 과장이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면 그 균일함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진짜 흥미로운 건 필체보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의 맥락입니다. 코덱스 기가스에는 성경 본문만 있는 게 아니라 베네딕트 수도회 규칙, 역사서, 의학 문헌 등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책 중간 펼침 면에 악마와 천국이 나란히 그려진 삽화가 있는데, 팬티 차림으로 쭈그리고 앉은 악마 그림이 워낙 독특해서 오히려 더 눈에 박혔습니다. 이 책은 현재 스웨덴 스톡홀름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으며 디지털화된 전문을 온라인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출처: 스웨덴 국립도서관 Kungliga biblioteket).
정경과 외경 — 선별된 텍스트와 버려진 텍스트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정경(Canon)과 외경(Apocrypha)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경이란 특정 종교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권위 있는 경전으로 채택한 텍스트를, 외경이란 그 범주 밖으로 밀려난 텍스트를 가리킵니다.
신약 성경 27권은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주교와 신학자들이 모여 선별한 결과입니다. 그 전에는 베드로 복음서, 유다 복음서, 필립 복음서 등 훨씬 많은 텍스트들이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처음 제대로 들었을 때는 "그러면 27권 외의 텍스트들에 뭐가 담겨 있었던 거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필립 복음서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예수의 관계를 암시하는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유다 복음서는 유다를 배신자가 아닌 예수의 가장 신뢰받는 제자로 묘사합니다. 바울과 테클라 행전에는 여성 제자 테클라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인으로 등장합니다. 이 텍스트들이 정경에 포함됐다면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문제입니다.
구약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주교는 구약을 46권으로, 개신교는 39권으로 셉니다. 마틴 루터가 1517년 종교개혁 때 유대교 히브리 성경 기준(39권)만 따르겠다고 선언하면서 생긴 차이입니다. 천주교가 포함하는 나머지 7권을 개신교는 외경이라 부르고, 천주교는 제2경전이라 부릅니다. 같은 책을 두고 이름이 다른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토니스 헤라클레이온이 언제 발견됐고 지금도 발굴 중인가요?
A. 2000년부터 고고학자 프랑크 고디오 주도로 발굴이 시작됐고, 현재까지 약 25년째 진행 중입니다. 도시 전체를 인양하는 것이 아니라 해저 현장을 보존하면서 선택적으로 유물을 꺼내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장기적으로 이어질 작업입니다.
Q. 코덱스 기가스를 실제로 볼 수 있나요?
A. 실물은 스웨덴 스톡홀름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화된 전문 PDF를 스웨덴 국립도서관 공식 사이트에서 무료로 내려받아 볼 수 있습니다. 악마 삽화를 포함한 모든 페이지가 고해상도로 공개돼 있습니다.
Q. 외경은 왜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건가요?
A. 단일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닙니다.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신학자들이 당시 유통되던 수많은 텍스트 중 27권을 선별했고, 그 기준에는 신학적 판단 외에 당시 교회 공동체의 정치적 맥락도 작용했습니다. 나중에 나그함마디나 사해에서 외경 원본들이 발굴되면서 이 논의가 다시 활발해졌습니다.
Q. 천주교 성경과 개신교 성경은 권 수가 왜 다른가요?
A. 1517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선언하며 유대교 히브리 성경(39권) 기준만 따르겠다고 했고, 이에 대응해 천주교는 1545~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46권을 구약 정경으로 확정했습니다. 신약 27권은 양측 모두 동일합니다. 결과적으로 천주교 73권, 개신교 66권입니다.
결론
해저에 잠긴 도시와 악마의 성서, 언뜻 보면 음모론 소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파고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수중고고학이라는 실증적 학문이 해저 도시를 25년째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있고, 코덱스 기가스의 전설적인 필체는 중세 필경사라는 직업의 엄격한 훈련 체계로 설명이 됩니다. 정경과 외경의 구분도 신학적 계시가 아닌 역사적 선별 과정의 결과입니다.
제 경험상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당연히 그런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누군가의 결정이었다는 걸 알게 될 때입니다. 이집트 해저 유적에 관심이 생겼다면 프랑크 고디오의 발굴 보고서를, 코덱스 기가스가 궁금하다면 스웨덴 국립도서관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직접 열어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인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